바닷속 아카이브

어린 바다의 바닷속 아카이브

  • 2024. 7. 14.

    by. 어린 바다

    목차

      20세기 심리학
      20세기 심리학

       

      <20세기의 심리학>

        19세기 말에 심리학은 서서히 독립적인 학문으로서의 위치를 확보하게 되었다. 그리고 응용심리학에서 여러 가지 세부 분야가 생겨났다. 특 히 산업, 군사, 정신치료 분야에서 더욱 그러했다. 20세기에는 심층심리 학과 행동주의와 같은 분야만 심리학으로 여기는 이론 방향이 생겨났다.

       

      1. 행동주의

        1912년과 1913년에 윌리엄 맥두걸(William McDougall, 1871~1938)과 존 B. 왓슨(John Broadus Watson, 1878~1958)이 쓴 행동주의에 대한 첫 번째 책이 출간되었다. 그 책에서 심리학은 행동의 학문으로 정의되었다. 또한 행동을 자극에 대한 유기체의 반응으로 보았으며, 복잡한 행 동을 단순한 자극반응의 단위들이 합쳐진 것으로 여겼다.

        행동심리학은 주어진 자극을 통해 반응을 예측하거나 반응에 근거해 어떤 자극이 이러한 반응을 일으켰는지를 확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 중심에는 습득한 행동의 발생, 성공, 실패, 보상, 처벌 등의 영향이 놓여 있다. 왓슨은 타고난 행동은 새로운 습관에 의해 임의적으로 대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나에게 십여 명의 건강한 아이들과 그들을 키울 수 있는 특수한 세계를 달라. 그러면 내가 보장하건대, 그중 한 명을 무작위로 뽑아서 전문가로 키울 수 있다. 의사, 법조인, 예술가, 상인은 물론이고 심지어 거지나 도둑으로 키울 수도 있다. 그 아이의 재능, 경향, 의도, 능력, 집안 출신과는 전혀 무관하게." 이처럼 왓슨에게 감정세계의 발달과 인성은 습득의 결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그 이후 행동주의의 발달과정에서는 이론적인 개념이 크게 증가하였다. 그로써 행동을 만들어주는 자극-반응의 연결 관계는 동기 등과 같은 또 다른 요소에 의해서 더욱 보충이 되었다. 새로운 방향의 대표적인 사람으로 클라크 헐(Clark Leonard Hull, 1884~1952)과 에드워드 톨먼(Edward Chace Tolman, 1886~1959) 등이 있다.

       

      2. 심층심리학

        심층심리학이 발전하면서 행동주의 에 반대되는 방향들이 발전하게 되었 다. 그 중심에는 의식과 무의식의 구분 이 놓여 있다. 특히 무의식에 숨어 있 는 생각, 기억, 감정을 중요하게 다루 었다. 이러한 관점은 의식적인 경험과 행동이 무의식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으며, 그로써 무의식은 심리적 고통의 근원을 나타낸다는 것에서 출발한 다. 이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심리분석을 창시한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이다. 그의 치료 방법은 소위 카타르시스적 방법에서 유래한 것으로, 최면을 이용해 환자들을 병적 증상이 처음 등장했던 심리 상태로 되돌아가게 만드는 것이다.   그로써 기억, 사고, 충동 등이 무의식으로부터 표출되며, 그것을 새롭게 경험하고 설명함으로써 병적 증상을 재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특히 성적인 장애가 병을 유발한다는 인식에 도달하였다. 그 관점에 대해서는 많은 논쟁이 있었고, 그로써 새로운 심층심리학적 경향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알프레트 아들러(Alfred Adler, 1870 ~1937)는 노이로제 형성의 주요 원인을 권력과 인정에 대한 욕구로 보았으며, 사회적인 불안으로 이러한 욕구가 더욱 쉽게 생겨난다고 보았다.

        분석심리학의 창립자인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은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집단적인 무 의식으로 확대하였고, 내향성과 외향성의 개념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그 이후 심리분석의 발전 과정에서 주요 관심은 특히 미국에서 병의 발생에 있어서 심리사회적 · 환경이론적인 원인 분석에 놓이게 된다. 여기에서 특히 중요한 사람으로 카렌 호나이(Karen Horney, 1885~1952)와 에리히 프롬(Erich Pinchas Fromm,1900~1980)이 있다.

       

      3. 나치시대의 심리학

        네오나치가 권력을 쥐게 되면서 몇몇 존경받던 심리학 교수들이 독일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그래서 성공한 심리학자 중 많은 사람이 외국으로 이민을 갔다. 나치들은 특히 유대인 심리학자와 좌파적 성향의 심리학자 그리고 성 연구와 같은 일반적이지 않은 심리학적 방향 등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 무렵에 학문과 연구의 바깥 영역에서 심리학자라는 직업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러한 실용적인 영역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정의되었고, 194141일에 심리학을 위한 석사학위 규정이 허용되었다. 또 교육, 산업, 의학, 진단학 등을 심리학의 적용 분야로 보았다. '심리학 석사' 라는 타이틀은 법적으로 보호되었다.

        일반적인 국방의 의무가 다시 도입되면서, 1935년에 군대심리학이 커다란 발전을 보이게 되었다. 여기에서 심리학자의 주요 과제는 군부대를 위해 생도들과 특수부대원의 적응력을 진단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942년에 공군심리학과 군대심리학이 갑자기 사라지게 되었다. 심리학에 종사하던 사람들은 전쟁이 끝나고 나서 다시 공공기관에 채용되었다.

       

      4. 전후시대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심리학 업무가 폭넓은 층의 국민들에게 적용 되면서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 상담소, 학교 안의 심리학 센터, 심리치료 병원 등이 세워졌다. 독일은 전쟁으로 인해 국제적인 발전에서 제외 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아이디어, 수단과 이론 등의 통합 과정이 이루어 졌다. 학습심리학, 사회심리학, 임상심리학 등이 독일에서 그 바탕을 마련하게 되었다.